01.감성수필

거미줄 그리고 빨랫줄(3)

dnc3206 2025. 4. 26. 17:41

《3편 – 줄을 치는 일》

 

그 후로도 거미는 계속 줄을 쳤다.  

그리고 나는 그 줄을 또 지웠다.  

그 반복 속에서,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.

 

이 거미는 떠날 생각이 없는 거구나.  

이곳이 거미에게는 삶의 터전이고,  

거미가 할 수 있는 일은 줄을 치는 것뿐이다.  

그게 생존이고, 가족을 위한 본능일지도 모른다.

 

그러고 보니,  

작은 새끼 거미들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.

 

그 순간, 나는 이 작은 생물에게 묘한 존경심을 느꼈다.  

이 조그만 유기체도  

자기가 할 수 있는 걸 꾸준히 하고 있었다.  

거미줄이 제거되는 건,  

거미에게는 좌절일 수 있다.  

하지만 거미는 멈추지 않는다.  

또 치고, 또 치고.  

힘들어도, 멈추지 않는다.

 

그리고 그걸 보며 나 자신을 돌아봤다.

 

줄을 치는 건  

거미의 일

 

지우는 건  

나의 일

 

삶은  

계속 줄을 치는 것

 

나도 이 우주 안의 유기체고,  

거미도, 나도  

같은 태양빛을 받고,  

같은 공간을 살아간다.  

그저 하는 일이 다를 뿐이다.

 

숙연해졌다.  

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.  

나도 거미처럼,  

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겠다.  

그게 어쩌면,  

내가 이 우주에 온 이유일지도 모르겠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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