《3편 – 줄을 치는 일》
그 후로도 거미는 계속 줄을 쳤다.
그리고 나는 그 줄을 또 지웠다.
그 반복 속에서,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.
이 거미는 떠날 생각이 없는 거구나.
이곳이 거미에게는 삶의 터전이고,
거미가 할 수 있는 일은 줄을 치는 것뿐이다.
그게 생존이고, 가족을 위한 본능일지도 모른다.
그러고 보니,
작은 새끼 거미들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.
그 순간, 나는 이 작은 생물에게 묘한 존경심을 느꼈다.
이 조그만 유기체도
자기가 할 수 있는 걸 꾸준히 하고 있었다.
거미줄이 제거되는 건,
거미에게는 좌절일 수 있다.
하지만 거미는 멈추지 않는다.
또 치고, 또 치고.
힘들어도, 멈추지 않는다.
그리고 그걸 보며 나 자신을 돌아봤다.
줄을 치는 건
거미의 일
지우는 건
나의 일
삶은
계속 줄을 치는 것
나도 이 우주 안의 유기체고,
거미도, 나도
같은 태양빛을 받고,
같은 공간을 살아간다.
그저 하는 일이 다를 뿐이다.
숙연해졌다.
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.
나도 거미처럼,
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겠다.
그게 어쩌면,
내가 이 우주에 온 이유일지도 모르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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